2020년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회사의 기획팀장으로 있었고, AI 데이터 플랫폼을 4개월 일정으로 빠르게 개발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처음에는 플랫폼의 방향성과 정책, 우선순위가 높은 개발 범위, 유관부서의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업무로 인해 기획이 바로 시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스토리보드가 빠르게 나오지 않았고, 개발팀에서는 기획서가 나오지 않아 개발을 기한내에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임원회의에서 “기획팀에서 2주 내에 기획서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라는 결론이 나왔고, 해당 결론에 대해 나는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2주 내에 기획서는 모두 완성됩니다. 따라서, 개발기한은 연장될 필요가 없습니다.”
팀원들은 나의 답변에 많이 놀랬으나, 결국 우리는 2주 동안 기획서를 모두 완료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획서라는 것이 초기 방향성과 정책을 잡는게 힘들지, 그런것들이 정리되면, 스토리보드를 작성하는 것은 금방이기 때문이다. 물론, 2주 이내에 완료하느라 팀원들의 고생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개발기한은 연장되지 않았다.
그런데, 기획서를 완료한 시점부터 팀원 K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K와 나의 대화를 공유하고, 그 대화를 통해 나의 꼰대같은 생각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후배 K : “우리는 죽어라 노력해서, 그 짧은 시간동안 기획서를 완료했는데, 그 누구하나 칭찬하는 사람이 없어서 속상해요.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아서, 화가나요.”
순간 나는 고민을 했다.
“이 친구의 정서적 회복을 위해, 나도 똑같이 회사욕을 하면서, 공감을 해줄까? 아니면, 이 친구의 성장을 위해서 솔직한 이야기를 해줄까?”
결국, 나는 꼰대 같다는 핀잔을 듣더라도, 이 친구의 성장을 위해 나의 솔직한 생각을 말해주기로 했다.
나 :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했고, 힘이 들긴 했지만, 기한 내 어려운 일을 해냈어. 그러면, 스스로 그 부분을 만족하면 되는거야. 타인의 칭찬에 의해 우리의 자존감이 좌우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후배 K : “팀장님은 속상하지 않으세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정은 하나도 못 받았잖아요. 저는 회사 프로젝트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 노력을 아무도 몰라주니까, 너무 속상해요”
나 : “나는 내가 한 일을 타인이 인지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 나는 내가 고생한 것에 대해서 타인이 알아봐주는 것은 ‘인지’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인지’가 쌓여서, 회사 내에서 나의 역량과 나의 필요성이 증명되는 것을 ‘인정’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인지’ 하나 하나에 목숨걸 필요가 없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너가 원하는 인정을 받게 될테니까!”
후배 K : “정말 팀장님은 T가 강하시네요. 전 F라서 그렇게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요”
나 :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어. 그냥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거야. 나는 우리팀이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팀이 되길 바래. 나 또한 나 스스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후배 K : “(입이 삐쭉나온 상태로)네네~”
나는 더 이상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늦어도 5년 안에 이 후배가 나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사실 이런 일은 자주 겪게 된다. 아무리 회사생활이라고 해도, 그 근간은 인간관계로 이뤄져 있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칭찬, 인정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면, 오히려 인정을 받기 더 어려워진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노력과 수고에 대한 가치를 단기적으로 빠르게 인정받기를 원하게 된다. 즉, 즉각적인 인정과 보상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상대방이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타이밍보다, 자신이 인정받기를 원하는 타이밍이 더 빨라지게 되고, 그것은 결국 스트레스와 불만으로 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최악은, 더 빨리 인정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타인을 깎아내리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돋보이려고 하는 직원도 본 적이 있다. 그런 직원을 볼 때면, 참 안타까울 뿐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도 빠르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다보니, 정말 드라마틱한 이벤트가 아닌 이상, 여러분의 노력과 수고가 빠르게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타인들 입장에서는 인정해야 할 대상이 당신 말고도, 너무 많은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어떤 노력이나 성과에 대해서 이벤트성 인정을 받기보다, 여러분 그 자체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충분한 기간동안, 여러분의 업무태도와 업무방식, 꾸준함, 누적된 성과들을 통해서, 여러분의 가치가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상사로부터 ‘이번 프로젝트에서 당신의 노력과 성과를 좋게 평가합니다’와 같은 평가를 받는 것도 좋지만….충분한 시간이 지났을 때, ‘당신은 우리 회사에서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노력과 성과를 좋게 평가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여러분 그 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즉, 좋은 평가를 받는 대상이 어떤 결과가 아니라, 당신 그 자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상사나 동료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다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동안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 여러가지 장점을 기반으로, 여러분이 더욱 무겁고, 가치있는 인정을 받기 원하는 것이다.
충분한 기간동안 많이 노력하고 성과를 냈는데,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지 마라. 생각보다 회사는 이기적이라서, 필요한 사람을 그렇게 쉽게 놓치지 않는다. 물론, 여러분같이 귀한 보물을 놓치는 회사도 간혹 있긴 하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다른 회사에서 재빠르게 당신을 알아볼 것이다. 그 어디에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항상 있듯이… 나 같은 사람도 항상 있다고 보면 된다.
“오늘도 꼰대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