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의 출산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예전에는 내 생활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 생각보다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온다는 것,
–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식당들이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깊다는 것.
– 공원을 걸을 때에도 예전에는 연인들이 더 많은 것 같았는데 요즘엔 아이들이 포함된 가족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리고 전까지 몰랐는데 우리동네 근처에 있는 롯데마트에는 토이저러스가 있었다.
역시 사람이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보고싶은 것이 다르며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며 살아가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들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며 상황에 따라서는 영원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참 희한하다.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내가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고 내가 그 입장에서 행하는 감정과 행동들이 타인과 비슷한가를 비교해보는 것인데 우리들 대부분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넓은 것으로만 생각한다.
즉, 마음이 넓거나 착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마음이 넓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이다. 이해하는 것과 용서는 의미가 다르다.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용서는 할 수 있는 않은가!
내가 생각할 때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상대방의 삶의 방식에 공감을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경험을 토대로 생성된다. 즉,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넓은 경험과 깊이를 토대로 생성되기 때문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무지함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하는 것은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대로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거나 냉정하게 끊어버린다. 난 이게 내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삶의 방식이 아니라 삶에 대한 무지함에서 오는 착각일 뿐이다.
내가 이제서야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부모로서의 삶을 3개월 앞둔 시점에서 이제 조금씩 그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경험이 그것을 더욱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내가 얼마전 집앞에 있는 카오디오 점에서 카오디오를 교체했는데 이게 음악을 키지 않아도 약간의 잡음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카오디오점에 가서 왜 이런 잡음이 나냐고 물어보니 스피커 문제란다. 그런데 카오디오를 교체하기 전에 그러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게 스피커 문제냐고 하니까 카오디오를 교체하면 스피커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테이블을 발로 차고 큰 소리로 싸우고 싶었지만 와이프도 옆에 있었고 다른 급한일이 있어서 그냥 참고나왔다.
그런데 오늘 공원에 그 인간이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눈에 불을켜고 그 인간 앞으로 다가가는데 그 인간이 위와 같은 아이 자동차에 자기를 닮은 아이를 태우고 리모콘으로 조정을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인간도 한 여자의 남편이고 가장이며 한 아이의 아빠인데 내가 그러면 되나… 그러면서 그냥 측은한 감정이 생겼고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로 했다.
이제 나이가 먹어가고 경험도 하나 하나 늘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타인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타인을 절대로 용서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않는 지난 날 내 삶의 방식은 무지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신을 섭섭하게 한 상대방에 때문에 여러분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상대방을 그냥 쿨하게 용서하기 바란다. 그것이 자신에게 고통(스트레스)을 가장 적게줄 수 있는 방법이다.(데일카네기 – 자기관리론-)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착하게 살자’라는 문구를 외칠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바란다.(2014.09.28 -이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