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을 돌이켜보자.
2018년 12월 현재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 당시, 직원수는 15명 정도였고, 정말 아무런 체계가 없는 상태였다.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참 많았다. ‘내 경험과 역량이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더 많은 곳에 쓰인 것 같다. 결코,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냥 회사의 일이 많았다.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시작조차하지 못한 일이 많았고, 시니어보다는 주니어가 훨씬 많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업무진행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업무를 잘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에 집중을 했던 시절이었다.
“회사의 비지니스가 팀원들의 성장속도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는 직원수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렸다. 2019년도에만, 내가 면접보고 채용한 직원이 25명을 넘었다. 15명이던 직원은 1년 뒤 80명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160명이 되었다.
직원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다보면,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과정에서 처음 위기를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면, 문제는 해결된다. 우리는 그 과정을 이겨냈고, 더욱 성장했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맞서서 이겨내면, 조직은 성장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회사에서는 본격적으로 상장준비를 시작했다. 상장준비를 하면서 다시 한 번 알게된다.
“상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EO, CFO 등의 임원역할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실무진들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들어, 회계감사를 받는다고 하면, 회계감사 대응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회계팀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회계팀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비지니스 이해도가 높은 엔지니어도 필요하다. 실무진들은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하고, 경영진은 합리적이고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상장도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AI기업이라도 상장은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이 지나가고….회사는 2023년 8월 31일 코스닥 상장을 했다. 그리고, 그 날 상한가를 기록하고, 그 다음날도 상한가를 기록했다.
우리 모두는 기뻤다.
기분이 좋다. 그런데, 마음 한쪽 구석 어딘가가 무겁다.
일부 직원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나름 초기 멤버이신데, 상장하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나는 대답한다. “당연히 좋죠”
대답을 하는 동시에 나의 대답이 너무 건조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상대방은 더욱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정말 기쁘다. 5년전부터, 기대했던 순간이기도 하고, 상장하자마자 연속으로 상한가를 기록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 막 흥분되거나 기분이 들뜨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2019년 시리즈 B 투자를 받았을 때가 더 흥분되었었다. 그 당시에는 회사가 50명 정도로 작은 규모이기도 했었고, 데이터라벨링 플랫폼 시장의 규모도 지금보다 작았기 때문에, 시리즈 B 투자라는 성과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었다. 그 당시 대표님과 사무실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누던 대화를 기억해봐도 나는 굉장히 즐거워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상장은 받아드리는 과정에서….기쁘기도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 그 어딘가가 무겁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제 주주의 이익도 고려하는 기업이 되어야한다.
회사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장을 했으면 이제 주주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세금을 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금을 안 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더더욱 비지니스에 대한 결과가 중요하다. 시장은 우리의 노력과정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결과가 중요하다. 그래서 ‘노력했다. 최선을 다했다’와 같은 문장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얼만큼 성장했다’와 같은 문장의 중요성은 높아진다.
직원들은, 코스닥 상장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이 크겠지만, 리더는 지속적으로 성장을 시켜야하는 책임감이 더 커진다. 리더의 노력과 결과는 주주들의 손실과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내가 맡은 분야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내가 회사에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다.
‘결과에 책임을 진다’라는 말의 무게는 언제나 그렇듯 무겁다.
플랫폼의 역할과 성장
AI 학습 데이터 플랫폼이 주로 하는 일은, 시스템이 할 수 없는 일을 사람이 대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시스템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노력으로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곳이 플랫폼인데….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데이터는 다시 시스템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기술적 성장으로만로는 플랫폼성장의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그래서, 플랫폼 성장은 단순히 경험많은 엔지니어를 채용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비지니스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부분 때문에 대기업들도 쉽사리 ‘AI 데이터 플랫폼’에 도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우리 회사가 ‘AI 학습데이터 플랫폼’ 시장에서 1등 기업이지만, 이제 1등이라는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국내 다른 기업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격차를 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해외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과는 격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장을 위해 달려왔고, 목표지점에 도달해서 기쁘기는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역할과 책임도 늘어나 있었다.
등산으로 비유하자면…..이런 느낌이다.
등산하기전 어떤 중간지점을 휴식지점으로 정했고 그 지점에 도달하여 잠깐 휴식 후 출발하려고 하니, 누군가가..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 지점부터는 다른 안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안전장치를 보유해야 합니다. 그 장치가 이 배낭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이 배낭도 함께 가져가세요.”
그런데 그 배낭이 내가 가지고 있는 배낭보다 더 무겁고 크다. 이제부터는 2개의 배낭을 메고, 산을 올라가야 한다.